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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덕의 고금담리(古今談理) (102) : 우보만리(牛步萬里)의 새해를 시작하며
한상덕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2021-01-10
▲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식구 중 한 명이 해외에서 들어와 자가 격리를 마쳤다.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반지하 두세 평 원룸에서 낮에도 불을 켜놓고 2주를 살았다. 얼마나 답답했을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짠하지만, 바라만 봐야 하는 입장에선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간혹 전화로 그날그날 태양의 모양과 색깔을 전해주는 일 밖에…. 해제 후의 첫 일성이다. "아, 하늘이시여!"


누구나 고개만 들면 볼 수 있는 2021년 새해 태양도, 지하에서 불편하게 지낸 누군가에겐 그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무상의 선물이 아니었다. 일상의 평범한 것도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었던 셈이다. '코로나19'가 준 또 하나의 깨달음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명언이 있다. 낙천적인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다. 그러나 혼자 즐기며 실천할 뿐 남에게 함부로 남용하진 않는다. 왜냐면 위로랍시고 쉽게 한 이 말이 경우에 따라선 가슴에 염장 지르는 자극이 될 수 있고, 감당하기 힘든 누군가에게는 열 받아 뚜껑 열리게 하는 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식이라도 말을 쉽게 해선 안 되지만, 그래도 부모가 해야 할 역할은 있다. 위로와 힘이 되는 격려의 말이다. 마음 같아선 힘들어도 즐기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역시나 조심스러워 에둘러 표현했다. 지난날 내가 겪은 경험담 하나를 들려주며, 불편함도 즐길 줄 아는 용기를 한 반 발휘해 보라는 메시지, 치질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한 때 치질로 엄청 고생을 많이 했다. 경제적 이유로 오랜 세월동안 수술보다는 늘 임기응변식 '달래기'만으로 살다가, 한계에 이른 어느 날 병원을 찾았다. 자존심 상하는 의사의 '꾸중'과 강권에 의해 수술은 진행되었고, 그 결과 지금은 얼마나 행복하게 살아가는지 모른다. 내 '뒤쪽'에도 이런 '평화'가 올 줄이야…. 마치 제2의 인생을 사는 것만 같다.


수술 당시, 불현듯 아내가 출산의 고통을 들려줬던 기억이 났다. 출산의 경험 없인 그 통증을 조금도 이해 못 한다는…. 순간 내게 엉뚱한 생각이 하나 들었다. 산모만이 겪는 출산의 고통을 남자인 내가 조금만이라도 느껴보고 싶다는…. 마취가 풀려 통증이 오더라도 무통 주사를 맞지 않고 그 고통을 참아본다면 비슷한 부위에 생살이 찢어진 그 아픔을 만 분의 일만이라도 비슷하게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나는 통증을 피할 길이 있었음에도 '만용(蠻勇)'으로 그 고통을 '즐겨'보았다. 진이 빠지도록 이를 악다물고 통증을 참아냈던 그 경험…. 이제는 튼실한 아이를 출산한 산모만이 느낄 수 있는 그 뿌듯함과 비슷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세월이 흐른 지금, 당시 고통이 어땠었는지 수술의 아픔이 어느 정도였는지 별 느낌이 없다. 신이 준 선물 '망각' 덕분이리라. '세월이 약'이라는 이치의 방증이리라.


"희망은 도망을 치더라도 용기를 잃어선 안 된다. 희망은 때로 우릴 속일지라도, 용기는 힘의 입김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부데루붸그가 한 말이란다. '희망고문'이 때론 살아갈 의욕을 꺾어놓곤 하지만 그럼에도 용기를 잃지 말라는 속삭임이다. 오늘 우리에게 주는 특별한 가르침이다.


너나없이 코로나 '때문에' 짜증을 호소하고 있지만, 작가 백영옥은 코로나 '덕분에' 지금까지의 시각 편향적인 삶을 재편하여, 자칭 '감각의 리밸런싱'을 하면서 살아간단다.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 즐기는 모습이다. 정채봉 시인의 좌우명은 '복을 아낄 것'이란다. '석복(惜福)'이란 말의 의미를 좋아하셨던 모양이다. 다들 참 멋지다.


'소'의 새해가 시작됐다. 나 역시 올 한 해 다소 어렵고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삶을 재편하고 복을 아끼는 겸손한 마음으로, '우보만리(牛步萬里)'의 정신을 실천해보련다. 짜증내지 않고 소처럼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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