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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마를렌 디트리히의 묘지에서
윤구 기자/뉴스1   |   2020-07-02
▲ 마를렌 디트리히   



마를렌 디트리히, 할리우드서 활동한 독일 출신 배우·가수
죽음과 삶이 생존하는 디트리히 묘지서 사색에 잠긴 이유


나는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대한민국에 대한 자긍심이 누구보다 강하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이런 나라를 만들어 베이비붐 세대인 우리 세대에 물려준 선배 세대들의 희생과 헌신에 고마움과 함께 동시에 미안함을 느낀다. 그렇지만, 아주 가끔 나는 내가 대한민국에 산다는 게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러울 때가 있다. 그때마다 당장 이민이라도 떠나고 싶어진다. 이른바 '님비 시위'가 벌어질 때다.


'님비'(NIMBY, Not In My Backyard).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님비 시위'는 주로 '혐오 시설' 건설을 반대하는 움직임으로 나타나곤 했다. 시위 주체가 어떤 사람들인지는 모르지만 화장장, 장애인 시설, 쓰레기 소각장이 이들의 주요 타깃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사람 일은 한 치 앞을 모른다. 어떤 이는 선천적 장애를 갖고 태어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사고로 후천적 장애인이 되기도 한다.


화장장이 왜 혐오시설인가? 온 곳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마무리하는 시설이 어찌 '혐오 시설'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최근 서울 마포구에서 기절초풍할 일이 벌어졌다. '님비 시위'가 급기야 노인시설까지 반대하고 나섰다. 아니, 자기들은 부모가 없나, 또 자기들은 늙지 않나? 도저히 믿기가 어려워 신문 기사를 한 번 더 읽었다. 사실이었다. 이런 사람들과 같은 서울 하늘 아래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고 있다는 게 창피했다.


순간 일부 정치인들이 내뱉은 망언들이 오버랩됐다. "60세 이상은 투표하지 말고 집에서 쉬라"(정××) "50대에 접어들면 사람이 멍청해져"(유××) "노인네들이 오지 못하게 엘리베이터를 모두 없애버리자"(김××)

 

님비 시위를 하는 사람들의 명분은 다양하지만 이유는 딱 하나다. "그런 시설이 들어오면 집값 떨어진다"


지난 2월 초, 한국방송통신대에서 초청 강연을 했다. '천재와 함께 떠나는 프라하·도쿄여행' 강연을 마치고 질의응답 시간이 되었다. 참석자 대부분은 일본학 전공자들이었는데, 여러 명이 '도쿄가 사랑한 천재들'을 읽고 왔다.


한 분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나쓰메 소세키의 묘가 있는 조시가야(雜司チ谷) 공원묘지 이야기를 읽다가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간 자들의 공간과 산 자들의 공간이 완전히 차단되지 않고 서로 소통하고 있었다'고 썼는데, 이게 무슨 의미인가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나는 이런 취지로 답했다. "흔히 붓의 문화와 칼의 문화로 대변되는 한국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는 사생관(死生觀)의 차이라고 봅니다. 석양 무렵에 조시가야 공원묘지를 둘러보는데 가방을 멘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아이가 콧노래를 부르며 공원묘지 가운데 길을 가로질러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 같았습니다. 또한 고층 아파트가 공원묘지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일본인들은 묘지를 누구도 혐오시설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죽음도 삶의 일부분으로 여깁니다. 일본인의 특징 중의 하나로 설명되는 잇쇼켄메이(一所懸命)는 이런 사생관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일본은 노벨과학상 수상자와 문학상 수상자가 28명을 배출했습니다. 또한 프리츠커상 수상자도 8명이나 됩니다"

 

▲ 일본 '가마쿠라 코코마에'역 승강장 출입문과 연결된 공동묘지 모습   


◇내가 묘지 탐방을 즐기는 이유


나는 낯선 외국도시를 여행할 때 시간이 나면 가까운 묘지를 찾곤 한다.
오래 전, 캐나다 북극권의 누나부트(Nunavut) 준주(準州)를 보름간 여행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일부러 팽너퉁의 공동묘지를 찾았다. 눈이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묘지를 한참 동안 거닐었다. 그곳에서 앞서 간, 이름 모를 이들의 묘비를 읽으며 나의 '라스트 신'을 생각해보았다.


도쿄에서 1시간반 거리인 가마쿠라는 젊은 층에 여행 명소로 인기가 높다. 아야세 하루카 주연한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바로 가마쿠라를 배경으로 찍은 영화다. 가마쿠라로 가는 최상의 여정은 후지사와역에서 에노덴(Enoden)열차를 이용하는 것이다.


철길과 태평양이 평행을 이루며 달리는 구간에 들어서면 이방인들은 입에서 터져 나오는 감탄사를 억누르기 힘들다. 이 영화를 보고 가마쿠라를 찾는 여행자들은 100% '가마쿠라 코코마에' 역에서 내린다. 영화에 등장하면서 유명해진 건널목이 있기 때문이다. 열차가 지나가고 건널목 차단기가 올라가면 바다가 쫙 펼쳐진다. 태평양! 여행객들은 PD의 큐사인을 받은 것처럼 일제히 박수를 친다.


그런데 '가마쿠라 코코마에'역의 플랫폼이 아주 흥미롭다. 플랫폼 바로 뒤는 산비탈이다. 그런데, 그냥 산비탈이 아니라 산비탈 묘지다. 이 플랫폼에는 출구가 두 개다. 하나는 건널목으로 통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산비탈 묘지를 넘어 마을로 가는 지름길이다. 한 여성이 개구멍 같은 작은 문을 통해 등산하듯 묘지 사이로 난 계단 길을 오르는 게 보였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매일같이 산비탈 묘지를 오르내리며 열차를 탄다. 이승에서 보낸 망자의 시간을 대면하며 일상이 이어진다. 한국인의 눈에는 정말 진기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 마를렌 디트리히 묘지(왼쪽)에서 본 묘지와 초등학교   

 

◇묘지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 베를린의 마를렌 디트리히 묘지


지금까지 내가 가본 묘지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베를린의 마를렌 디트리히(1901~1992) 묘지였다. 베를린 태생인 마를렌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회유를 뿌리치고 자유 진영의 최전선에서 투쟁했다. 잉그리드 버그만을 비롯한 할리우드 스타들과 함께 미군 부대를 순회하며 병사들을 위문했다.

 

문명과 야만의 대결장에서 그녀는 당당히 문명의 편에 섰다. 독일인이면서 전체주의 나치 편에 서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해 전쟁이 끝나고 한동안 독일인들은 그녀를 불편하게 여겼다. 일부에서는 그녀를 비난하기도 했다. 그때 마를렌은 말했다. "나는 나치 독일을 증오했지, 독일을 증오하지 않았다"


하지만 독일 통일 이후 그녀는 독일인의 자부심이 되었다. 그녀는 파리에서 눈을 감았지만 "죽으면 고향에 묻어 달라"는 유언에 따라 베를린에 묻혔다. 저 유명한 베를린영화제가 열리는 광장 이름이 '마를렌 디트리히 광장'이다.


그녀가 잠들어 있는 공원묘지는 분데스 플라츠 지하철역에서 5~6분 거리다. 직사각형 형태로 주택가 한복판에 둘러싸인, 아담한 크기다. 3면이 주택 단지였고, 한 면은 초등학교 벽면과 맞붙어 있다. 묘지 중간에 나무 벤치를 띄엄띄엄 배치했다. 내가 묘지를 찾은 것은 오전 11시쯤이었는데, 담장 너머에서 아이들이 까불고 노는 소리가 쉼 없이 들려왔다. 마치 먹이 앞에 모여든 수백마리의 참새 떼처럼 재잘거리는 소리가 공원묘지를 가득 채웠다.


마를렌이 잠들어 있는 주소는 34구역. 정문에서 34구역까지는 2분 거리. 그녀 옆에는 유명한 누드사진 작가 헬무트 뉴튼(1920~2004)이 나란히 누워 있다. 마를렌의 묘비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Hier steh ich an den Marken meiner Tage'(여기, 나는 내가 살아온 날들의 흔적 앞에 서 있다) 이 묘비 앞에서는 초등학교 건물이 더 가까웠다. 학교로 들어가는 쪽문도 하나 보였다. 아이들이 깔깔대며 웃는 소리가 귀가 아플 정도였다.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는 졸졸 시냇물 소리처럼 언제 들어도 기분을 좋게 한다. 자연의 ASMR이다. 마를렌은 외로울 틈이 없겠구나!


벤치에 앉아 아름다운 정원 같은 공원묘지를 감상하고 있는데 젊은 부인이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 일본 조시가야 공원묘지를 내려다보고 있는 고층 아파트   


◇유대인 중에 문화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인물이 많이 나오는 이유


왜 유대인 중에 문화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인물이 많이 나올까를 한 번쯤은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전도서 7장 2절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우리는 유대인들이 자녀 교육을 위해 잔칫집보다 초상집을 데려간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우리는 어떤가. 말로는 효도를 강조하지만 부모의 묘지는 일상의 공간으로부터 될 수 있으면 멀리 떼어놓고 격리시키고 차단하려 안간힘을 쓴다.


일상생활에서 앞서간 자의 공간이 보이면 혐오시설이라고 공격한다. 집값이 떨어진다며 입에 거품을 문다.


칼럼니스트로 유명한 지인은 "한국 사람은 철학과 사상이 없다"고 했다. 한국인의 철학과 사상은 '물신(物神) 숭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입으로는 정의와 공정을 부르짖는 사람들일수록 뒤에서는 눈 하나 깜짝 않고 물신을 숭배하며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다.


내 삶의 모토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다. 종교는 없지만 늘 이것을 잊지 않으려 한다. 인간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려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존재다. 내가 낯선 곳에서 묘지 탐방을 즐기는 이유다.

 

 

<글·사진 제공 뉴스1=조성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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