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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금요단상> 단추 하나 때문에 참패한 나폴레옹
권우상 명리학자·역사소설가   |   2020-06-18
▲ 명리학자·역사소설가 

나폴레옹 군대는 가장 막강했던 1812년 6월에는 병력수가 60만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막강한 군대가 그해 12월에는 1만 명 미만으로 대폭 줄었다. 나폴레옹은 빨리 군대를 재건하고 불안정한 수도의 정세를 완화시키기 위해 근위대를 뒤따라오게 하고 일부 측근들만 대동하여 전선에서 출발, 파리로 향했다. 총지휘권은 뮈라에게 인계했는데 나폴리 왕이기도 했던 뮈라는 빌뉴스를 포기하고 남은 군대와 함께 얼어붙은 네만강을 건너 바르샤바로 후퇴한 후, 자신의 부재로 인해 왕국 내에서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외젠 드 보아르네에게 총지휘권을 넘겨주고 나폴리로 떠났다. 남아 있는 병사는 원정 직전과 비교하면 얼마 되지 않아 네만강 서쪽에 도착한 때에는 나폴레옹 병력은 겨우 5천여 명만이 싸울 수 있는 상태였다. 마크도날이 이끄는 라트비아의 나폴레옹군은 그해 12월 20일 철수를 시작했다. 나폴레옹의 남은 병력은 누더기 같은 군복을 걸치고 서(西)러시아 보리소프 인근의 베레지나 강을 건너 모스코바로부터 멀어지는 길고 긴 퇴각 길에 올랐다. 그런데 이때 러시아군의 기습공격을 받아 생존한 병사들은 굶주림, 질병, 부상 등의 와중에 다시 복병을 만나 죽을 운명이었다. 러시아의 매서운 혹한 때문이었다. 러시아의 매서운 겨울 추위를 견디기에는 군복과 장비가 형편없었던 것이다.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나폴레옹군의 퇴각은 유럽 지도를 크게 바꾸어 좋았다. 1812년에 러시아 인구의 90%는 농노였고, 농노(農奴)는 지주에게 권한이 있어 지주(地主)의 마음대로 매매할 수도 있었다. 러시아인의 농노는 서유럽 농노와 달리 노예와 같은 신분제도에 묶여 있었다. 나폴레옹군이 지나간 자리에는 프랑스혁명(1789년~1799년)의 원칙 전 이상에 젖어 중세의 유럽 사회제도를 타파하고 정치체계를 바꾸고 민족주의를 추종했다. 지역마다 달라 혼란스러웠던 법규나 제도 대신 통일된 민주 정부들과 법전들이 등장했고, 개인이나 가정 또는 재산권에 대한 새로운 개념들이 도입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십진법 체계로 정비된 도량형이다. 이는 지역마다 수백 가지의 도량형을 대신하는 표준이 되었다. 그렇다면 러시아 전투에서 무엇이 이토록 60만 대군의 나폴레옹군을 몰락시켰을까? 왜 나폴레옹 군대가 연전연승(連戰連勝)하고도 오로지 러시아 전투에서는 패배를 했을까? 제이 버레슨은 자신의 저서에서 나폴레옹 군대가 러시아 전투에서 패배한 이유를 영국 옛날 자장가인 「못 하나 빠져 편자를 잃고, 편자가 없어 말을 잃고, 말이 없어 기수(騎手)를 잃고, 기수가 없어 전쟁에 지고, 못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에서 「단추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라고 바꾸어서 표현했다. 나폴레옹 군대는 단추와 같은 매우 사소한 것 때문에 패전했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말하는 단추는 나폴레옹군 장교들의 외투를 비롯하여 보병들의 바지와 재킷을 채우는 데 쓰였던 주석(tin) 단추를 말한다. 광택을 띤 금속성의 주석은 기온이 떨어지면 푸석푸석한 비금속성 흰색 가루로 변하는데, 변해도 주석은 주석이다. 단지 구조적인 형태만 다를 뿐이다. 나폴레옹 군대의 주석 단추도 푸석푸석하게 되면서 마치 여성 망토와 오래된 카펫 조각이나 구멍이 숭숭 나 있고 줄에 탄 외투를 덮어쓰고 있어 꼭 유령과 같았다고 한다. 주석으로 된 여러 개의 군복 단추가 모두 떨어져 나가면서 러시아의 매서운 추위에 노출된 나폴레옹 군대는 전투할 수 있는 기능은 상실해지고, 군복 단추가 떨어져 나가면서 나폴레옹 병사들은 무기를 잡아야 할 손이 옷을 여미는 데 사용했을 것이라는 것이 제이 브레슨의 주장이다. 이를 입증하자면 주석에 대한 화학적 실험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화학자들은 나폴레옹이 패배한 화학적(주석) 근거로 이 주석의 가설을 인용하면서 만약 주석이 겨울 추위에 변질되지 않았다면 나폴레옹은 계속해서 모스코바로 진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눈앞에 곧 정복할 수 있는 서유럽과 동유럽을 단지 군복 단추 하나 때문에 러시아전에서 50만 대군을 잃고 패배했다는 것은 나폴레옹으로써는 억울하고 원통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도 하늘이 결정하는 운명이라면 어찌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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