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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칼럼> 윤사월과 차(茶)
박정수 진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   2020-05-27
▲ 진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코로나19'의 세월은 그동안 많이 흘렀다. 처음에 우리들은 코로나에 놀라, 아름다운 매화와 개나리를 제대로 보지도 못했고, 뒤에는 가정집에서 콕콕 되어, 흐드러지게 핀 벚꽃도 볼 수 없었다. 이제 윤사월이 되어, 소박하고 은은한 향기의 찔레꽃과 사랑이란 꽃말의 이팝나무는, 하얀색 꽃으로 천지를 이루고 있다. 또 뻐꾸기와 꾀꼬리의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고, 앞산 뒷산에 송홧가루가 뿌옇게 휘날린다.


시인 박목월의 '윤사월' 시가 있다. 곧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필자는 고교 1학년 때, 국어 선생님으로 '윤사월' 시를 접했다. 국어 선생님께서는 분위기에 맞춰 시를 열심히 낭독해 주셨고, 시의 주제, 특징, 구성, 해제 등에 설명을 해 주셨다. 필자의 기억으로, 수업은 봄철인 것 같다. 그때 수업을 지금 생각해 보니, 수업에 대해 기억은 희미하다. 그래서 '윤사월' 시를 다시 보도록 본다.


'윤사월' 시의 뜻은 봄 산 속의 아름다움, 그 산 속에 고립되어 지내는 눈먼 처녀가 세상에 대한 그리움을 그린 것이다. 꾀꼬리는 깊은 산중에 찾아온 늦봄의 정경을 누리고 있고, 그러나 앞을 못 보는 처녀는 이 정경을 볼 수가 없다. 그래서 눈먼 처녀는 꾀꼬리의 울음소리로 '윤사월'의 정경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특히 눈먼 처녀가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 설렘, 그리움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는 것을 독자 우리들은 안타깝게 여긴다. '코로나19'의 불안함에, 시 낱말인 '송홧가루, 봉우리, 산지기, 꾀꼬리, 외딴집, 처녀사, 문설주'들은 우리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고, 정겹게 해 준다.


'윤사월'은 대략 5~6월 정도 된다. '윤사월'은 신록 계절이다. 곧 산과 들은 연초록으로 가득하다. 어느 날 제자와 같이 사천 다솔사를 갔다. 다솔사는 신라 때에 세웠다. 다솔사는 특이하게 적멸보궁(대웅전)에, 우리나라에서 잘 볼 수 없는 열반 직전의 부처모습인 와불상(臥佛像)이 있다. 그 와불상은 기이하다. 스님 한용운(1879~1944)은 '3·1 독립선언서'를 서명한 민족 대표 33인이다. 한용운은 다솔사에 머물면서 수도를 했다. 소설가 김동리(1913~1995)도 다솔사에 한동안 머물면서 소설 '등신불'을 썼다.


다솔사는 차(茶)가 유명하다. 최범술(사천 생, 1904~1979)은 독립운동가이며 승려이다. 1916년 다솔사로 출가해 스님이 되었다. 최범술은 일본왕의 암살을 계획했을 때 중국의 상하이(上海)로 가서 폭탄을 운반해 왔으나, 거사 직전 발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그래서 사천 다솔사는 독립운동의 본거지라 한다. 최범술이 다솔사 절 뒤에 차밭을 만들어, 차나무를 심고 가꾼 것으로 전한다. 지금 이곳에 1만여 평의 야생 차나무가 자라고 있다.


차(茶)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일본으로 전했다. 우리나라는 차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대학교(대학원)에서 차(茶)학과를 유치해 설립한다. 진주에서도 최근에 경남과학기술대학교 대학원에서 차(茶)문화학과를 설립했다(총장 김남경). 오늘날의 차는 문명사적으로 충분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본다. 그래서 차 연구소가 많이 생기고 있다.


우리나라에 차(茶)씨가 전파된 시기는 청동기라 보고 있다(매월다암연구소장 최정간). 차는 중국 장강 유역지역에서 출발해서, 요동반도를 거쳐 해로(海路)를 따라 신의주, 평양, 김포, 충주, 진주 대평리, 부산 동상동 등으로 전파되었다는 고고학의 가설이 있다. 한반도에서의 차 문화는 불교의 수용과 함께 가야, 백제, 고구려, 신라 왕국에서 제각기 찬란한 꽃을 피웠다.


우리나라에서 차가 발전한 과정을 보면, 삼국(三國) 중에서 중국 당나라의 차가 가장 융성했다. 당나라에 있던 김지장 보살이 고국 신라에 귀국할 때 차(茶)씨를 가지고 와서, 신라 민중들과 함께 차 농사 재배운동을 전개했다. 그래서 이 같이 당나라에서 들여온 선차(茶)는 신라에 전파되었다. 신라에서 차는 불교를 통해 더욱 발전했다. 고려조에서는 일연선사(一然禪師)가 선차(茶)를 이어받았다. 또 조선에서는 매월당 김시습(金時習)에 의해 선차(茶)를 새로운 개념의 '한차(韓茶)'로 재탄생을 시킨 것이다.


신라는 그동안 사찰 중심의 '승가집단(僧家集團)'이 다도(茶)를 차지했다. 그러나 김시습에 의해 조선사회의 엘리트인 선비계층을 비롯해, 만백성까지 다도를 확대해 발전시킨 것이다. 다도(茶)의 이념과 사상(思想)도 출가사상(出家思想)인 '무소유(無所有)'에서, 일상생활인 재가사상(在家思想), 즉 유교의 청빈과 최소유(最小有)로 전환했다. 다도(茶)의 외연은 넓어졌고, 그리고 이념보다 점점 현실화되어 갔다.


곧 오늘날 일본의 다도(茶)는 가장 인정받는 차다. 중국은 처음에 무상(無相)의 선차(茶)를 창시했다. 그 뒤 조선의 김시습은 선차(茶)에서 '한차(韓茶)로 발전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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