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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길 문학박사 진주의 4·19혁명 상황 회고 논문(下)
윤구 기자   |   2020-04-26
▲ 허만길 문학박사    

4·19 당시 진주의 역사 자료로 남게 돼
마산 못지않은 불안과 흥분 뒤섞여 충돌


진주사범학교 학생들의 시위 준비는 4월 24일 촉석루에서 가까운 숲이 우거진 한적한 곳에서 밤늦게까지 진행됐다.
허만길 진주사범학교 학생회 위원장은 시위 학생들의 신체적 피해가 있을까 봐 걱정이었다. 허만길 학생회 위원장은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사범학교 학생들은 초등학교 교원이 될 사람들인데 정치적인 일에 지나치게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자주 들었다고 했다.


드디어 4월 25일 시내 고등학교 학생회 연합 시위가 일어났다. 진주사범학교 12학급 600여 명은 오전 9시 신안동 교정에 집합했다. 학생들이 긴장 속에 기백이 넘쳤다. 허만길 학생회 위원장은 '민주주의 만세' 어깨띠와 '운영위원장' 완장을 두르고, 대대장, 중대장, 소대장들도 완장을 둘렀다.


허만길 학생회 위원장은 단상에 올라 여러 고등학교 학생회 연합으로 시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른 배경을 간결하게 말했다. 질서를 존중하면서 애국과 정의를 한껏 외치자고 했다.


학생들의 함성이 터졌다. 허만길 학생회 위원장이 맨 앞장을 서고 대대장이 뒤따랐다. 어깨띠를 두른 학생, 구호를 선창하는 학생, 팻말을 흔드는 학생들이 각자의 역할을 했다. 버스 도로를 걸어 남강으로 흘러드는 큰 냇물의 다리를 건넜다. 높은 둑을 넘고 시가지로 들어섰다.


9시 40분경 진주사범학교 학생 시위대는 진주경찰서 정문 앞에 멈추었다. 허만길 학생회 위원장과 참모들이 경찰서 현관에 들어섰다. 총을 들고 긴장했던 경찰들이 에워쌌다.

허만길 학생회 위원장이 경찰서장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경찰은 허만길 학생회 위원장을 서장실로 안내했다.


허만길 박사는 논문에서 류사원 경찰서장은 침착하고 온순하고 점잖아 보였으며, 나이도 많은 편이 아니었다고 기술했다.
"우리들이 시위에 나선 까닭은 서장님도 잘 아실 것입니다. 오늘은 진주사범학교 학생들 뿐만 아니라, 시내 모든 고등학교 학생들이 같은 시각에 시위를 시작한 것도 이미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나라와 국민과 진주를 사랑하는 우리들은 질서 있게 우리의 주장을 내세우기로 했습니다. 결코 총을 쏘는 것이나 폭력에 의한 충돌이 없었으면 합니다. 시위 학생들의 생명에 위협이 없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장은 차분히 생각을 가다듬는 듯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소"


허만길 박사는 논문에서 4월 25일 진주의 학생 시위대 가운데 경찰서장을 만난 것은 허만길 학생회 위원장이 처음이었다고 했다.
경찰서장은 이보다 약 1시간 30분 뒤 오전 11시 20분경 또 다른 학생 시위대와 시민 군중 앞에서 부정선거 책임 추궁을 당했다.


허만길 학생회 위원장이 경찰서장을 만난 뒤 진주사범학교 학생 시위대는 북쪽 비봉산 쪽으로 행진을 계속했으며, 남쪽으로 행진해 오는 진주여자고등학교 학생 시위대와 엇갈리며 서로 반대 방향으로 행진했다.
진주사범학교 학생 시위대는 진주중학교와 진주금성초등학교 근처에서 방향을 오른쪽(동쪽)으로 돌렸으며, 법원 로터리(2020년 현재 롯데인벤스)에서 다시 남쪽으로 돌려 시내에서 가장 넓은 길을 행진하며 구호를 외쳤다.


길가의 수많은 시민들이 두 팔을 들어 만세를 외쳤다. 시민들 중에는 허만길 학생회 위원장 앞까지 달려와서 만세와 찬사를 보냈다.
진주극장 앞 광장에서 행진을 멈추고 정렬을 했다. 맞은편 중앙시장의 상인들이 몰려나왔다. 시장 입구 경전여객버스회사의 버스에 탔던 사람들도 버스에서 내려 시위대와 마음을 함께 했다. 허만길 학생회 위원장은 호주머니에서 '선언문'을 꺼냈다.


이 '선언문'은 그 당시의 잉크 글씨의 일반적 도구인 끝이 갈라진 철필로 파란색 잉크를 묻혀 붉은 줄이 큰 네모와 가로로 그어진 편지지(갱지·가로 약 22㎝, 세로 약 15㎝)에 썼던 것인데, 허만길 박사는 이 '선언문'을 46년 동안 고이 간직하다가 빛이 바래고 종이가 낡아 찢어지기 시작하자, 2007년에 발행한 수필집 <진리를 찾아 이상을 찾아> 원고에 옮긴 뒤 애틋한 마음으로 불태웠다고 했다.


허만길 학생회 위원장의 선언문 낭독이 있은 다음 진주사범학교 학생 시위대는 다시 행진해 진주시청 앞에서 멈추었다. 허만길 학생회 위원장을 비롯해 이십여 명의 학생이 시청 안으로 들어갔다. 관권 부정 선거에 적극 개입한 기관이므로, 청사 안을 한 바퀴 돌며 팻말과 어깨띠 시위를 했다.

 

▲ 허만길 박사 한국국보문학 특강 모습   


◇경찰서장, 시장, 자유당 위원장에게 부정선거 책임 추궁


4월 25일의 대대적인 고등학교 학생회 연합 시위에는 진주농과대학과 해인대학 학생들도 참여했다.
민주당원과 수많은 진주 시민들이 몰려와 함께 뭉쳤다. 그때 진주시의 인구는 10만 명으로 알려지고 있었는데, <동아일보>는 진주의 4월 25일 시위 인원에 대해 "12시 현재 학생 데모대와 만 명을 넘는 시민으로 온통 데모의 물결을 이루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길가에 운집한 수만 시민들은 박수로 학생들을 고무했고, 민주당원들은 동 데모대 뒤에 따랐다"라고 보도했다.


<부산일보>는 4월 26일 기사에서 "진주 시내 학생들은 전 시가를 뒤덮은 시민들의 인파를 헤치면서 25일 상오 10시를 기해 데모를 감행했다"고 하고서, "11시 20분에 데모대는 진주경찰서에 밀려들어 류사원 서장을 불러내어 3·15부정선거의 책임을 물었다. 류 서장은 '자유당도 해체되는 이 마당에 나도 구국대열에 나설 각오'라고 말하자 데모대는 박수를 보내고 그 길로 시청 앞에 쇄도해 김택조 시장을 불러 '부정선거의 책임을 지고 시장직을 사퇴하라'고 외쳤다. 김 시장은 '10만 시민이 원한다면 곧 물러나겠다'고 의사를 전하자 데모대는 다시금 동성동에 있는 자유당 시 당사에 밀려들어 문해술 위원장을 불러내고 또 다시 부정선거를 추궁했다. 문 씨는 '3·15진주선거가 확실히 부정선거였다'는 것을 명백히 밝히고 '나의 거취는 곧 성명서를 통해서 여러분의 요구에 응하겠다'고 답변했다. 이에 당사 앞에 주저앉았던 데모대는 하오 1시 30분 서서히 물러갔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4월 25일 석간 기사에서 "길가에 운집한 수만 시민들은 박수로 학생들을 고무했고, 민주당원들은 동 데모대 뒤에 따랐으며, 경찰은 요소요소 경비에만 신경을 쓸 뿐 데모대에는 전혀 관심을 표시하지 않았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4월 26일 기사에서 "25일 상오 11시 20분경 진주농대와 농고 데모대 2천여 명은 진주경찰서 앞에 집결해 '이승만 정부는 물러가라'는 푸라카드를 들고 농성했는데, 진주서장 류사원(柳四源) 총경은 이들 데모 대원들에게 '천하공당인 자유당도 해체의 운명에 놓여 있고, 전 국무위원들도 사표를 내고 부통령에 당선된 이(李) 의장도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다고 나는 듣고 있다. 오늘날까지 역사 깊은 진주에서의 학생 데모가 없기를 바라고 막아 온 것은 이 진주가 평온하기를 바란 것뿐이며, 오늘 여러 학생들이 평화리에 데모한 데 대해서 고맙게 생각한다'라는 연설을 하자, 데모대는 박수를 보내면서 물러갔다"고 했다.

 

◇4월 26일 마지막 대규모 학생 시위, 김택조 진주시장 사임서 받아


진주 시내 고등학교 학생회 연합 시위는 4월 26일에도 대규모로 진행됐는데, 중학교 학생과 초등학교 학생들도 참가했다. 시위는 이날 오후 대통령의 하야 소식이 전해지기까지 진행됐다.
대통령은 오전 10시 20분경 하야 성명을 발표했는데, 허만길 진주사범학교 학생회 위원장은 시위를 마치고 오후 3시경 중앙로터리와 중앙시장에 이르는 거리를 걷고 있는데, 자동차가 뿌리는 '호외 신문'을 통해 대통령 하야 소식을 알았다고 했다.


진주 시내 6개 고등학교 학생회 연합 시위의 대단원에 해당하는 4월 26일 학생 시위의 규모와 위력은 <부산일보> 4월 26일과 4월 27일 기사에 나타나 있다.

"26일 상오 9시경 진주에서도 남녀학생 약 3천여 명이 데모를 감행했다. 6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합세한 동 데모대가 시내를 지날 때 양쪽 간선도로에 늘어선 수천 명의 군중들도 이에 호응했으며 동 데모대는 '최인규 전 내무장관을 처벌하라', '국회를 해산하라'는 플래카드와 구호를 외쳤으며 흥분된 데모대는 반공청년단 청사와 시청 청사의 일부를 파괴했다"(4월 26일 기사)


"26일 상오 10시부터 약 2천 명의 학생 데모대는 시청을 포위 김택조 진주시장, 최대현 부시장과 선거 공무원들의 사퇴를 요구하고 즉석에서 사임서를 받아 시민들에게 이를 낭독했다. 그리고 자유당 문해술 진주시당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한 데모대는 반공청년단 사무실을 부수고 하오 3시경 해산했다"(4월 27일 기사)

 

▲ 충남 시와숲길 공원 허만길 시비 앞에서    


◇위대한 진주를 사랑한다는 허만길 문학박사


허만길 박사는 논문을 마무리하면서 중·고등학교 학창시절부터 진주를 위대한 도시라고 자랑스러워해 왔는데, 사랑하는 위대한 진주가 끊임없이 발전하고 영광이 함께 하기를 빌고 빈다고 했다.


허만길 박사는 진주에서 살던 시절을 회상하는 글들을 많이 썼는데, 시로는 '10대의 그날들', '젊은 날의 아픔' 등이 있고, 수필집 <열네 살 푸른 가슴>에는 진주중학교 학창시절의 회상으로 채워져 있고, 수필집 <진리를 찾아 이상을 찾아>에는 진주사범학교 학창시절과 부산에서 교육 활동하던 일의 회상으로 채워져 있다.

 

진주의 4·19혁명 상황과 관련한 시 '젊은 날의 4·19혁명'도 문학지에 곧 실리게 된다고 했다.
허만길 박사는 젊은 날에 인생 이상을 다짐하고 진리를 추구하며 정든 비봉산을 그리워하는 시 '진주 비봉산'을 <한국현대시> 21호 2019년 상반기호(편집 한국현대시인협회. 발행 시문학사, 서울)에 발표했는데, 전북대학교 이종록 명예교수(서울대학교 작곡과 졸업. 한국작곡가회 상임고문)에 의해 가곡으로 작곡돼, 2020년 2월 소프라노 최윤정 서울대학교 성악과 강사의 노래로 <작곡가 이종록 가곡 제39집> (Composer Lee Jongrok Songs Vol.39. 제작 C&C) 음반에 수록됐으며, 악보는 이종록 작곡집 <나 억새로 태어나도 좋으리>(2020년)에 실리었다. 국립합창단 단원 바리톤 유지훈 님의 노래로도 음원이 제작됐다. '진주 비봉산' 노래는 인터넷 유튜브(YouTube)에서 '허만길 진주 비봉산' 혹은 '가곡 진주 비봉산'이라고 검색하면 들을 수 있다.

 

▲ 진주의 4·19혁명 상황 회고 논문이 게제된 <한국국보문학> 2020년 4월호 표지   



◇허만길 약력:1943년생, 시인, 소설가, 복합문학 창시, 진주중(1958년)·진주사범학교(1961년) 졸업, 국가 시행 최연소 중학교교원자격증(18살·1961년) 및 최연소 고등학교교원자격증(19살·1962년) 받음('기네스북' 한국편 등재), 서울대학교 교육학 석사, 홍익대학교 문학박사, 정신대문제 첫 단편소설 '원주민촌의 축제'(1990년) 발표, 대한민국 광복 후 최초로 199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자리 보존운동 성과, 교육부 국어과 편수관·교육부 국제교육진흥원 강사,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해외동포용 '한국어' 교재개발 연구위원, 학술원 국어연구소 표준어 사정위원, 서울대학교 '국어교육학사전' 집필위원, 서울 당곡고 교장 역임, (2020년 현재)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 한글학회 회원, 한국국보문인협회 자문위원, 한국신문예문학회 자문위원, 아시아태평양문인협회 자문위원, 한국문예춘추문인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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