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허만길 문학박사 진주의 4·19혁명 상황 회고 논문(上)
윤구 기자   |   2020-04-22
▲ 허만길 문학박사   

 

<한국국보문학> 2020년 4월호 발표
진주사범학교 시절 4·19 참여했던 기록
4·19 당시 진주의 역사자료로 남게 돼


60년 전 진주의 4·19혁명 진행 상황이 당시 17살 진주사범학교(초등학교 교사 양성 고등학교) 학생회 위원장 겸 학도호국단 운영위원장이던 허만길 문학박사(시인·소설가·전 교육부 국어과편수관·현재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에 의해 회고 논문으로 상세히 기술돼 충절의 도시 진주의 역사 자료로 남게 됐다.


서울에 거주하는 허만길 문학박사는 의령군 칠곡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다섯 식구가 진주로 이사해 아버지와 함께 진주봉래초등학교 구내 이발소에서 일하며 진주중학교(1955년)와 진주사범학교(1961년)를 졸업했다.


허만길 박사는 1960년 진주사범학교 3학년 때 격렬했던 진주의 4·19혁명에 적극 참여했던 일을 잊지 못하면서, 여러 경로를 통해 진주에 4·19혁명 기념단체나 정기적인 4·19혁명 기념행사가 있는지를 알아보았으나 특별함이 없음을 알고서, 허 박사의 기억과 허 박사의 수필집 <진리를 찾아 이상을 찾아>(2007년)에서 그때를 간단하게 회상한 대목과 <부산일보>, <동아일보>, <조선일보> 기사를 참고해 '4·19혁명 60주년 기념 특별기고'로 <한국국보문학> 2020년 4월호에 책 35쪽 분량의 논문 '진주의 4·19혁명 상황과 허만길의 선언문 회고'를 발표했다.


4·19혁명은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의 장기적인 독재와 그해 3월 15일에 실시된 대통령과 부통령 부정 선거에 대한 학생들이 중심이 된 민주화 혁명을 가리킨다.


혁명은 선거 당일 마산의 학생 시위에서 경찰의 발포로 많은 사상자가 나고 행방불명됐던 마산상업고등학교 김주열 님의 시체가 해안에서 발견되자, 4월 11일 마산의 학생과 시민의 시위가 크게 일어나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에 이르기까지 진행됐던 것이다.


허만길 박사는 진주의 4·19혁명 상황은 <조선일보> 1960년 4월 17일 기사에서 "(진주에도) 마산에 못지않은 불안과 흥분이 뒤섞여 충돌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동아일보> 1960년 4월 18일 기사에서 "전국적으로 데모가 가장 위험 지대로 알려지고 있는 진주"라고 보도했을 정도로 격렬했는데, 그 중요하고 값진 역사적 사실이 진주에서 잊혀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60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역사적 자료로 남기고 싶어 이 논문을 썼다고 했다.


허만길 박사는 논문에서 4·19혁명의 발단과 일반적인 진행 과정을 소개하고서, 진주의 4·19혁명 진행 상황을 날짜별로 상세히 기술했다. 논문의 주요 내용을 소개해 본다.

 

◇3·15부정선거 후 4월 17일 이전까지 산발적 시위와 민주당원의 철야농성


허만길 박사는 3·15 부정 선거 이후 진주에서는 처음에 민주당원과 고등학생과 시민들이 경찰의 눈을 피해 예고 없이 산발적으로 시위를 벌이곤 했는데, 한정된 기자들의 인력으로는 취재할 겨를조차 없었다고 했다.
진주사범학교 학생회 위원장이던 허 박사도 산발적인 시위에 참여하곤 했는데, 허 박사의 언행 하나하나는 학교 선생님들과 경찰의 주시를 받았으며, 부모는 허 박사의 신변을 몹시 걱정했다고 한다.


4월 13일부터의 진주의 시위 상황은 <조선일보>, <동아일보>, <부산일보>에 구체적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민주당 진주시당부가 4월 13일 경찰에 3·15선거 규탄 데모를 위한 집회계를 제출했으나, 기각당한 후 당원 30명이 17일까지 철야 농성을 계속했음을 보도하고, <동아일보>는 4월 14일 하오 민주당원 수십 명이 데모를 일으켰다가 20여 명이 경찰에 붙잡혔다고 했다.

 

▲ 진주의 4·19혁명 상황 회고 논문이 게제된 <한국국보문학> 2020년 4월호 표지   

 

◇4월 17일 시위대와 경찰의 긴박한 대치


4월 17일 진주에서는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긴박한 상황이 벌어졌다. <부산일보>는 민주당 진주시당을 중심으로 한 산청, 하동, 합천군 당 핵심 당원 24명에 의해 17일 상오 9시부터 감행할 예정이었던 데모는 이곳에 증파된 200명 경관의 삼엄한 경계 속에 민주당 진주시 당사 안에서 이활인(李活仁) 씨가 시위 선언문만을 낭독하고 농성을 계속했다고 했다.


10시 15분 선언문을 낭독하는 스피커 소리가 청사 밖으로 들려 나오자, 사복 경관은 당사 안으로 밀려들었고, 10명씩 짝지은 무장 경찰관은 당사 앞 10미터로 경계망을 압축, 확성기도 못 쓰게 했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17일 아침 8시경부터 민주당원은 머리에 '민주당'이라는 수건을 두르고 "3·15 협작 선거 다시 하자", "정부는 마산 사건의 책임을 져라"는 푸라카드를 시당부 앞에 높이 세우고 경찰의 어머어마한 수비에도 불구하고 데모 강행 태세를 갖췄다고 했다.


이날 민주당은 진주 장날을 택해 데모 강행을 고집했는데, 시내 요소에 증파된 경찰관들이 경비에 눈초리를 빛내고 있어 외곽선에서 산발적으로 퍼뜨리려던 데모도 시당부 본부 시위대와 함께 완강히 저지되고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4월 17일 진주 시내 학생들의 데모 동향도 소개했다. 시내 11개 중·고등학교의 데모도 은연중 무르익고 있어 경찰은 그간 당지 진주농림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데모를 위해 마련한 푸라카드와 삐라를 사전에 압수했고, 주동 역할을 하고 있는 학생 30여 명을 진주시에서 30리 거리에 있는 청곡사(淸谷寺)에 교외 지도라는 이름 아래 수용했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전국적으로 데모가 가장 위험 지대로 알려지고 있는 진주에서는 17일 민주당이 데모를 감행하려다가 완강한 경찰의 포위를 받아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민주당청사 앞 도로변에 앉아 농성 태세를 취하고 있다고 했다.


데모가 시작된 지 약 4시간 만인 하오 2시 경에 드디어 스크람을 짜고 거리로 뛰어나 오려 했는데, 50여 명의 사복 경찰관 및 민주당청사 주변을 둘러싼 백여 명의 무장 경찰관이 4중·5중으로 포위하고 있어, 데모대는 이 포위망을 중과부적으로 뚫지 못하고 약 30분간 충돌하다가 2시 30분경 해산되고 말았다고 했다.


경찰은 데모 군중의 가장 열성분자로 지목되는 김용하(민주당 진주시당 조직부장), 김영근 씨 등 두 사람을 연행해 갔는데, 류사원(柳四院) 진주경찰서장은 데모대들에게 데모만 해산한다면 이들 2명을 즉각 인계하겠다고 했다고 했다.

 

▲ 진주사범학교 3학년(17살) 1960대 시절 허만길 박사 앞줄 오른쪽    



◇4월 18일 민주당 진주시당사 모두 부서짐


<동아일보> 4월 19일 3쪽에는 '진주 데모'라는 제목으로 세로로 4장면의 사진을 수록하고서, 사진 설명을 했다. 사진 설명 끝에는 '박 본사특파원 촬영'<진주·부산 본사항공편>이라 했다. 진주에서 사진을 촬영해 그 사진을 부산으로 가져가서 동아일보 항공편에 실어 서울 동아일보 본사로 보냈음을 알 수 있다. 허만길 박사는 이런 점은 진주의 데모가 크게 주목받고 있었음을 뜻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4월 18일 석간에는 진주의 민주당 당사가 데모를 하려는 당원들과 이것을 막으려는 경찰관과의 옥신각신 통에 당사가 모두 부셔졌다고 보도했다. 당원들은 경찰의 제지로 데모는 감행치 못하고 당사에 모여 있다가 배가 고프면 밥을 서로 나눠 먹고 막걸리를 나눠 먹어 가면서 데모를 감행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허만길 박사는 민주당 진주시당사가 부셔진 기사가 석간에 보도됐음과 그 이전 기사들을 고려해 보면 진주의 민주당 당사는 4월 18일에 모두 부서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비상계엄령 속 4월 25일 6개 고등학교 학생회 연합 시위 합의


4월 19일에는 서울에서 10만 명이 시위에 참여하고 시위대가 경무대 앞까지 다가가 "이승만은 물러가라"고 외침에 따라 전국적으로 비상계엄령이 선포됐다. 이에 따라 진주 시내 중·고등학교는 4월 21일부터 4월 26일 대통령 하야 때까지 등교 중지(휴교)가 실시됐다.


허만길 박사는 진주의 학생 시위는 3·15 부정 선거 이후 각 고등학교가 개별 학교 단위로 소규모 혹은 중규모 시위를 일으켜 왔다고 했다. 4월 23일에는 진주 시내 6개 고등학교 학생회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4월 25일과 26일에 시내 고등학교 학생회 연합으로 시위를 일으키자고 합의했다고 했다.


6개 고등학교의 위치는 도심에서 서쪽에 진주사범학교, 북쪽 비봉산 아래 진주고등학교와 진주여자고등학교, 진주여자고등학교의 남쪽에 대아고등학교, 도심에서 남쪽 남강을 건너 진주농림고등학교와 해인고등학교가 있었다.


각 학교가 휴교 중이었으므로 각 학교 학생회 위원장은 학생 비상 연락망을 통해 학생들에게 시위가 있게 됨을 알렸다.

 

뒤로가기 홈으로

인기뉴스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갱신

Copyright ⓒ 뉴스경남.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