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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칼럼> 단속사의 정당매(政堂梅)와 강회백
박정수 진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   2020-02-17
▲ 진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2020년 올해 겨울 날씨는 지난해보다 기온이 훨씬 높은 것 같다. 그래서 매화도 빨리 개화될 것 같다.

 

산청에는 의미(古梅)를 가진 네 그루 매화가 있다. 하나는 강회백이 심은 '단속사'의 정당매(政堂梅), 둘은 칼을 허리에 찬 선비인 실천 유학자 남명 조식이 제자를 위해 지은 학당 '산천재'의 남명매(南冥梅), 셋은 고려 후기에 관직 찬성사(贊成事)인 하즙이 심었다는 '남사 마을'의 원정매(元正梅), 넷은 중국에서 몰래 목화씨를 들여왔던 문익점을 모시는 '도천서원'의 노산매(蘆山梅)이다. 이 네 그루의 매화는 겨울의 차디찬 눈보라를 참고 이겨, 곧 향기 매화의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할 것이다.


산청군 단성면 운리, 단속사 절터에는 약 644년 고목의 매화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 고목 매화나무는 정당매(政堂梅)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정당매(政堂梅)는 강회백(13571402)은 과거시험에 급제하여 벼슬이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이르렀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강회백은 산청 단성 사월에서 태어났다. 강회백은 단속사에서 과거시험 공부를 하면서, 손수 매화 한 그루를 심었다. 강회백은 20세(1376년)에 급제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니 매화를 심은 시기는 과거에 급제되기 전이니까, 1376년 전에 심은 것으로 보인다(강희안, 養花小錄).


강회백은 정당문학(政堂文學)과 대사헌(大司憲)을 지낸 분이다. 1392년 정몽주와 정도전 일파가 대립해 정치적으로 정몽주가 살해되어, 그 사건에 연루되어 진주에 유배로 기록되어 있다. 그 유배가 풀린 뒤 조선 태조 7년에 동북면 도문사가 되었다. 강회백은 46세에 별세했는데, 일생을 마치기 전에 다시 단속사의 정당매를 찾아가서 "단속사에서 매화를 심다."의 아래 내용 시를 남겼다.


"우연히 옛 고향을 다시 찾아 돌아오니/ 매화 한 그루 사원에 향기 가득하네/ 타고난 성품을 옛날부터 알고 있지만/ 은근히 눈 속을 다시 향해 피어 있네/ 한 절기가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오니/ 섣달의 매화에서 하늘 뜻 볼 수 있네/ 다만 솥을 가지고 매화열매 조리할 것인데/ 헛되이 산중에서 떨어지고 또 열었네"(증보국역진산세고).


강회백은 이 시에서 선비 매화의 기품, 지조, 강함, 책임 등의 가치를 노래했다. 또 그는 자신의 내면을 또 다시 다짐하며, 단속사 정당매를 매섭게 바라보았을 것이다.


강희백의 손자가 강희안이다. 강희안은 진주에서 태어났다. 강희안은 정인지 등과 집현전 학사로 〈훈민정음(1443년)〉을 만들었다. 강희안은 이조, 호조, 예조의 참의를 지낸 분이었다. 시문(詩文)에 뛰어나서 많은 시를 남기고 있다. 강희안은 고향 진주를 그리워하는 내용의 시를 남기고 있다.


정당매가 심어져 있는 단속사의 창건에 대하여, 〈삼국유사〉에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신라 35대 경덕왕(749년)에 대내마(大柰麻) 이준(李俊)이 벼슬을 버리고, 단속사를 세워 그 절의 중이 되었다"는 것이고, 둘은 "신 충(信忠)이 경덕왕(764년)을 위해 이 단속사를 창건했다"는 것이다. 이 절은 본래 금계사(錦溪寺)라 한다. 이 절은 속인(俗人)들이 많이 찾아와서, 이를 막는 방법을 어느 도사에게 물었더니, 도사는 절 이름을 〈단속사(斷俗寺)〉으로 고치라 해서, 그랬더니 많은 속인들이 끊기고 절도 망했다는 설이 있다(한국지명총람).


또 단속사는 큰 절로 알려졌다. 그래서 단속사가 크기 때문에 절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짚신이 다 해질 정도로 절의 규모가 컸다고 한다. 김일손(1464~1498년)은 지리산 천왕봉을 등산 뒤 쓴 〈두류기행〉(26세, 1489년)에서 "단속사는 황폐하여 지금 중이 거처하지 않는 곳이 수백 칸이나 되고, 동쪽 행랑에 석불 500구가 있는데, 하나하나가 각기 형상이 달라서 기이하기만 했다"했고, 그 당시의 단속사 사항을 술회했다. 또 단속사에는 솔거가 그린 〈유마상(維摩像)〉이 있었다고들 하고 있는데, 지금은 〈유마상(維摩像)〉의 자취를 알 길이 없다.

 

단속사는 내력이 깊은 고찰이다. 그런데 절터에 동쪽과 서쪽에 돌탑만 우뚝 서 있고, 절의 주춧돌이 이리저리 놓여 있어, 폐허 된 절터임을 쉽게 알게 하고 있다. 폐허 된 단속사가 아쉽다. 산청군청(조계종)에서 절의 복원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봄이 어떨까? 그러면 이곳은 산청군의 유명한 관광지로 바뀌지 않을까? 단속사 절터 서쪽에는 강회백이 심은 고목 정당매(政堂梅)가 서 있고, 정당매 주변에 정당매의 자식(子) 매화나무들이 힘차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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