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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덕의 고금담리(古今談理) (88) : 김밥 ‘꽁다리’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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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2019-11-11

▲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올해도 하동에서 연극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배우들은 다 아마추어들이다. 낮에는 각자의 생업에 종사하다가 날이 저물면 지친 몸 이끌고 연습장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이다. 저녁을 못 먹고 오는 이들이 많다. 나도 그중에 하나다. 굶고 연습할 수는 없기에 갓 사온 따끈한 김밥과 어묵·빵 등으로 저녁을 대신한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배우들 중에 고등학교 2학년 재학생이 한 명 있다. 조성모라는 학생이다. 연극은 처음이고 앞으로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그는 내가 봐왔던 또래 학생들과는 좀 남다른 면을 가진 학생이다. 초롱거리는 눈, 누구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또렷또렷하게 하는 말, 그리고 꿈에 대한 간절함과 확신 같은 것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그에겐 특이한 습관이 하나 있었다. 김밥 '꽁다리'를 먹지 않는 것이다. 아직까지 한 번도 꽁다리를 먹어보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한마디 해 주고 싶었다. 김밥 꽁다리도 먹는 것이라고. 그러나 누구도 간섭하거나 교육시키지 않은 것을 내가 연출가라고 '꼰대' 짓을 해야 하나 많은 생각을 하다가 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다 두어 달 동안 연습을 통해 서로 많이 가까워진 어느 날, 내가 그를 얼마나 좋아하고 사랑하는지를 알 것이라 생각되던 어느 날, 연극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 하나 해도 좋겠느냐고 운을 띄운 다음 조용히 속삭였다. 오늘부터 김밥 꽁다리 먹는 연습도 한번 해 보자고.


그는 큰 반감 없이 그렇게 해 보겠다고 했고, 지금은 김밥 꽁다리를 망설임 없이 잘 먹고 있다.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사실, 김밥 꽁다리 먹는 것은 연극과는 관계없는 일이다. '꼰대'의 쓸데없는 '갑질'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인생 공부'라는 차원에서 나의 권유에 동의해 주었고, 그 결과 지금은 김밥을 '겉모양'으로 취사선택하지 않는 '평범한' 일상을 만들어냈다. 연출가로서 바람 하나가 있다면 그가 앞으로 훌륭한 연극인이 되었으면 좋겠고, 그보다 김밥 꽁다리의 추억을 통해 편견 없는 인생의 또 다른 통찰들을 많이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편견은 부정적인 결과로 귀착되는 경우가 많다. 별것 아닌 현상이나 경우라도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게 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때가 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바람직하지 못한 편견은 얼른 고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진짜 몰라서, 아니면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서 편견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경우라면 어쩔 수 없지만, 깨달았다면 얼른 긍정적으로 인식을 바꾸고 실천하는 것, 이것이 곧 인생을 더 훌륭하게 만들어가는 방법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연극연습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며 살아간다. 상호 간의 소통과 인내, 배려를 배우고, 약속의 중요성과 성장의 의미를 배운다. 능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도전정신을 배우고, 또 잠재 능력을 이끌어내는 극기의 가치를 배운다. 그러기에 연극 연습의 현장은 무대 기본기를 튼튼히 하고, 어떤 배역이든 능히 소화해낼 수 있는 실력을 쌓아가는 수련장일 수도 있지만, 인간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삶의 기본기를 배우고 실천해 가는 인생 최고의 배움터가 아닌가 생각될 때가 많다.


"아름드리 나무도 털끝 같은 새싹에서 시작된다(合抱之木, 生於毫末)."고 노자(老子)가 그랬던가? 그 털끝 같은 새싹의 몸짓이 지금 하동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이번 달 11월 22일, 그동안 땀 흘려 준비한 하동극단 '어울터'의 연극, '엄마의 강'이 세 번째로 막을 올리게 된다. 이번 작품은 김한규 시인이 섬진강을 소재로, 연로한 어르신의 건강과 행복, 자식의 도리, 다문화 가족의 일상 등을 그리고 있다. 배우들의 땀방울에 많은 관중들의 박수가 보태진다면, 시골 지역에서 어렵고 힘들게 만들어낸 몸짓들이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올해도 작년처럼 객석이 꽉 찼으면 참 좋겠다.

기사입력 : 20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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