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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두려움의 망꾸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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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재 경남 한마음마인드교육원 2019-10-13

▲ 오세재 경남 한마음마인드교육원 
부모님은 어려서 힘들고 배고픈 시절을 겪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먹을 것이 없어서 나무껍질을 벗겨 먹고 입에 곡기 냄새만 채워도 족했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의 세대는 배고픔을 자손들에게 물러주고 싶지 않았다. "너는 잘살아야 된다."는 노래를 불렀다. 징기스칸은 달랐다. 징기스칸도 배가 고팠고 누구보다 큰 어려움을 당했다. 혼란과 무법천지의 시대인 몽골에서 살았던 징기스칸은 멋진 말을 남겼다. 적(敵)은 내 안에 있다. 나를 극복할 때, 나는 징기스칸이 됐다. 극복해야 될 내 안의 적(敵)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두려움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을 두려움을 이길 수 없다.


작가 친기즈 아이뜨마또프는 '백년보다 긴 하루'에서 키르기즈스탄의 츄안츄안 부족이 적을 잡아서 망꾸르트를 만드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강력한 태양 볕에 사람을 묶어두고, 머리털을 밀고, 암낙타의 젖가슴을 뒤집어씌어 두면, 태양의 열기에 낙타의 젖가슴 가죽은 쪼그라들어 머리를 압박해서 많은 사람이 죽고, 살아남은 사람은 머리카락이 자라면서 낙타의 유방 가죽을 뚫고 나올 때, 그 고통이 너무 커서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노예는 다른 종들보다 훨씬 비싼 값에 팔려 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기억을 잊고 주인이 시키는 대로 사는 종, 망꾸르트가 됐기 때문이다. 그런 망꾸르트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다시 머리털이 밀리고, 뜨거운 태양 아래 낙타의 젖가슴 가죽을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두려움은 나를 묶고 끌고 다니는 보이지 않는 적이다. 권력을 잃을까 두려워서 수많은 정적을 제거한다. 전쟁이 두려워서 수많은 무기들을 만들고 내가 잘못될까 두려워서 온갖 거짓말을 한다. 내 잘못이 드러날까 두려워서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가난이 두려워서 도적질이나 강도가 되기도 한다. 가난이나 무지함을 이기는 사람은 있어도 자기 속의 두려움을 이기려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두려움의 종으로 산다. 사람들의 이목이 두렵기에 직장이 없어도 힘들고 천한 일은 하지 않는다. 공무원이 되기 위해 수년 동안 공부하고 기다려도 3D 업종에는 일할 근로자가 없어 외국인들을 고용한다. 남들의 무시를 즐길 마음만 있다면, 천하게 보이는 육체노동을 하면서 달콤한 잠을 잘 수 있다. 어려움을 즐길 마음이 있다면, 결혼을 해서 더 많은 자녀를 낳고, 양육을 하면서 자식들의 재롱에 빠져 살 수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에 다윗이 있다. 이스라엘의 국기에 그려진 별을 다윗의 별이라고 한다. 그는 원수인 사울 왕 앞에서 아무 무장 없이 수금을 들고 서 있었다. 창을 든 사울과 수금을 든 다윗은 너무 대조된다. 왕이지만 대적이 자기를 언제든지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창을 곁에 두고 쉼이 없는 사울은 오늘 현대인의 모습이 아닌가? 창이 아닌 수금을 들고도  대적을 용서하고 살려주는 다윗은 우리가 나가야 될 방향이 아닌가? 오늘날 우리는 우리를 위해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도 불안해한다. 위대한 우리의 선조들은 보조키가 달린 철문도 아닌 나무 창살문에 창호지를 붙이고도 편히 잠이 들었다. 자신의 생명을 하늘에 맡긴 탓인가? 대한민국 전체가 큰 두려움에 빠져있다. 이제 우리 시대는 배고픔이 지나갔기에 보다 큰 철학과 인성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 조지 워싱턴의 아버지처럼 정원의 벚나무를 찍어낸 아들을 향해 "너의 정직함은 벚나무보다도 훨씬 위대한 것이다."라고 할 때가 됐다.

기사입력 : 2019-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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