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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칼럼> 새마을금고 발상지는 산청 생초면 하둔마을 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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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진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2019-09-18

▲ 진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하둔마을은 '새마을금고'의 발상지이다. 하둔마을 어귀에는 약 500년의 고목 느티나무가 묵묵히 서 있다. 이 느티나무는 마을 사람들에게 쉼의 자리를 주고, 마을의 역사가 되기도 한다. 어느 날, 필자가 살던 집 마루에 앉아서, 마을의 전체를 바라봤다. 마을 동서남북 사방을 둘러싼 야산은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마을은 바람 한 점 없는 포근한 곳이다.


하둔마을의 이름은 옛날부터 토박이말(고유어)로 '아랫등골'로 불려 왔다. 마을이름 '아랫등골'은 다음과 같은 어원(語原)을 가지고 있다. 하둔마을이 있는 골짜기에, 두 개 땅이름의 '아랫등골'과 '웃(윗)등골'이 있다. '웃등골' 마을 골에는 서당(書堂)이 있고, 그곳에 박(潘南) 씨의 묘가 있는 산이 있다. 그 묘가 있는 산의 모양이 등(燈)불을 켜는 등잔(燈盞)을 닮았다. 그래서 그 골짜기를 일컫는 '등골' 마을이름이 생겼다.


'아랫등골'은 '아래+등+골'의 말로 된 합성어이다. '아랫등골'의 '아래'는 위아래의 뜻이고, '등(燈)'은 한자말로 '불을 켜는 등잔'의 뜻이고, '골'은 토박이말로 '골짜기'의 뜻이다. 불교의 등(燈)은 '중생이 어둠 속에서 진실함을 갈구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의 뜻이다.


“땅이름은 원래 고유한 우리말로 됐다. 그러나 신라 35대 경덕왕(757년)은 토박이말인 우리말을 한자말로 바꾸어 사용하게 했다. 그래서 큰 땅이름은 한자말로 바꾸었다. 곧 산청(山淸)의 이름은 '지품골(← 깊(深)은+골) 〉산음(山陰) 〉산청(山淸)'으로 토박이말에서 한자말로 변천했다. 이 일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께서는 작은 땅이름에서는 토박이말로 지켜왔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1914년에 행정 구역을 대대적으로 변경했다. 그래서 면(面)·리(里)가 병합하게 돼서, 자연히 토박이말의 땅이름이 없어지기도 하고, 토박이말인 땅이름이 한자말로 바뀌게 됐다. 이때 하둔마을 이름도 '아랫등골'에서 완전한 한자말 이름인 '하둔(下屯)'으로 바뀌었다. 곧 한자말 '하둔(下屯)'은 1914년에 생겼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1800년대 말기와 1900년대 초기에, 새로운 문물을 배우기 위해 학교로 또는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이때 하둔마을 사람들은 산골에서 살았지만, 자녀 학업의 열정은 강했다.


하둔마을의 선각자 김은호(1870~1943) 님은 생초면 초대면장을 한 분이다. 김은호 님은 아들 김신석(1896~1948) 님을 두었고, 그 아들을 부산상업학교에 입학했다. 김신석 님은 부산상고를 졸업한 뒤, 부산 조선은행에서 근무했고, 당시 금융계에서는 회계업무의 제일자로 평가했다. 큰 부자(富者)인 현준호 님이 1920년에 광주·목포 지역에 호남은행을 창립했다. 현준호 님은 현대그룹 회장 현정은의 조부이다. 김신석 님은 현준호 님에 의해 호남은행에 전격 스카우트 됐고, 호남은행의 실무를 총괄했고, 또 호남은행을 크게 발전시켰다. 김신석 님은 삼성 회장 이건희 부인 삼성미술관 전 관장 홍라희의 외조부이다(김신석의 조카 김옥탁 증언).


그리고 선각자 권중두(1879~1960) 님은 법조인으로 남원법원에서 활동했다. 권중두 님은 아들 권태선(1903~1970) 님을 일본 상업학교에 유학시켰다. 그러나 권중두 님은 아들이 권력을 누릴 수 있는 법학을 시키지 않았고, 금융의 길을 가게 했다(권태선 손자 권오상 증언).


하둔마을 선각자인 김은호(1870) 님과 권중두(1879) 님은 자녀 두 분을 금융인으로 성장시켰다. 김신석(1896) 님과 권태선(1903) 님의 두 분께서는 7세 차이로 같은 하둔마을에서 성장했다. 그래서 권태선 님은 금융인 김신석 님의 영향으로, 일본 상업학교에서 금융의 교육을 받게 된 것 같다. 권태선 님은 뒤에 고향 하둔마을에 정착해 알게 모르게 주민들에게 금융을 교육했다.


하둔마을 출신 두 분은 금융인이 됐고, 특히 김신석 님은 전국적인 금융인이 됐다. 하둔마을은 '새마을금고'의 발상지가 됐는데, 이 현상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필자는 하둔마을이 '새마을금고'의 발상지가 된 것은 필연적이라 본다. 왜냐면 '하둔마을금고'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금융의 정신이 흐르기 때문이다. 곧 하둔마을에는 약 1915년부터 금융의 정신이 살아와서, 1963년 '하둔마을금고'의 설립까지 금융의 정신이 이어져 왔다. 하둔마을이 '새마을금고 발상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둔마을금고'는 많은 역할을 했다. 특히 학생들에게 큰 힘이 됐다. 지금 그들은 사회의 중역이 됐다. 학자로 카톨릭상지대학교 교수 박신헌과 부산외국어대학교 동남아학부 교수 박광우가 있다. 법조인 전 수원지방 성남지원 부장판사 및 변호사 오동운, 언론인 부산국제신문 사장 박무성이 있다. 또 행정가 전 울산광역시 부시장 오동호, 전 산청군 부군수 및 도의회 의사담당관 박정준, 예술인 가수 너훈아(박승찬) 외, 그 당시 55가구 하둔마을에서 인재가 많이 배출됐다.

기사입력 : 2019-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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