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박정수 칼럼> 새마을금고 발상지는 산청 생초면 하둔마을

크게작게

박정수 진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2019-09-02

▲ 진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1963년 5월 25일 산청군 생초면 하둔마을에 '하둔마을금고'가 설립됐다. 하둔마을의 좌장 권태선(1903년) 님과 이장 박봉술(1920년) 님께서 주도적으로 설립했다. 그 당시 권태선 님께서는 61세로 일본에서 상업학교를 졸업하셨고, 복식부기 등 회계의 경리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가지고 계셨다. 이장 박봉술(1920년) 님께서는 한학(漢學)을 하셨고, 그 당시 44세 젊은 청년으로, 하둔마을의 발전과 주민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마을 이장으로서 18년(1952~1969) 동안 헌신적으로 활동을 하셨다.


우리나라의 1950년대는 6·25전쟁으로 국토 전체가 폐허 됐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난한 국가이었다. 그래서 국민의 삶은 미국 원조인 잉여 농산물, 소비재 등을 받았다. 1960년대에는 국민소득이 약 78달러 정도의 시대였다. 나라의 경제는 피폐해 돼 있었고, 절대적으로 빈곤했었다. 그러나 우리 민족에게는 어려운 고난을 극복하는 민족정신이 있다. 그래서 국민들은 가난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가 있어서,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1967년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했었다.


이때 하둔마을에서도 보릿고개를 탈출하기 위해, 자기(自己) 발전을 꾀하기 시작했다. 마을에 가난을 극복하고자 노력한 선각자(先覺者) 두 분이 계셨다. 곧 권태선 님과 박봉술 님이셨다. 마을 이장 박봉술 님께서는 필자인 나의 아버지이시다. 그 당시 권태선 님께서는 61세로 노인이었고, 박봉술 님께서는 44세였다. 두 분은 연세 차이로 볼 때 부자지간이었다. 실제로 두 분께서는 부자 사이로 가깝게 지내오셨다. 박봉술 님께서는 항상 마을에 관한 일이나 개인 일까지도 권태선 님의 의견을 듣고 활동하셨다.


박봉술 님께서는 마을을 이끌어 가는 구심점이었다. 이장 박봉술 님께서는 항상 어떻게 하면 "마을 주민들이 가난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강구해 오셨다. 그런 중에 마을의 좌장 권태선 님께서는 마을을 발전하기에는 무엇보다 "마을의 금고가 훌륭한 제도라는 것"을 간파하셨다. 그래서 이장 박봉술 님께서는 마을에 '마을금고'을 설립해서, 운영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신 것이다.


1960년대 하둔마을 사람들도 삶은 정말 어려웠다. 그래서 이장 박봉술 님께서는 '마을금고' 설립의 의욕과 마을주민의 삶 향상을 시켜야겠다는 신념이 강하셨다. 그것은 "미국의 원조 밀가루를 하둔마을에 받아, 주민의 삶을 향상시켜야 하겠다."는 그것이었다. 그래서 박봉술 님께서는 "산청군청(생초면)으로부터 마을 취로(就勞)사업을 가져오는 것이 최선이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이 일을 생초면장과 함께 적극적으로 추진하셨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하둔마을의 '취로(就勞)사업'으로 '뒷골 저수지'를 만들었고, 박봉술 님께서는 산청군청(생초면)에 자신의 밭(566평)을 기부하면서, 하둔마을에 취로(就勞)사업을 가지고 오셨다. 이는 주민의 삶을 향상하기 위해서다.


하둔마을 주민들이 가난에서 탈피하려는 의지력과 노력으로, 마을주민의 자립과 협동정신으로 '뒷골 저수지'를 만들게 됐다. 또한 여기에 이장 박봉술 님께서 마을을 이끌어 당기는 강한 추진을 가졌기 때문에, '하둔마을금고'을 설립할 수 있었다. 따라서 마을주민은 '뒷골 저수지'를 만든 고유한 마을정신에 의해서, 1963년 5월 25일에 '하둔마을금고'가 만들어졌다. 또 '하둔마을금고' 법인을 등록했다. 그래서 하둔마을은 '새마을금고'의 발상지가 됐다.


그 당시 마을 '협동조합' 회원의 약 50명(55가구)이 활동했다. 1963년 4월 15~24일 부산에서 재건국민운동본부 경남지부가 지도요원을 교육하는 연수회가 있었다. 그래서 하둔마을에서는 권태선 님과 이장 박봉술 님께서 협의해서, 그 지도요원 연수회에 교육을 받기 위한 젊은 오신영(23) 님을 추천해 보냈다. 그 연수회에서 교육을 받은 오신영 님께서는 하둔마을에 돌아와서, 좌장 권태선 님과 이장 박봉술 님께 마을금고에 대한 내용을 즉각 보고했다. 그래서 '하둔마을금고'를 만들기로 하고, 마을회관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권태선 님께서는 금고 이사장이 되셨고, 금고의 제반업무를 맡는 총무는 오신영 님께서 임용됐다. 설립한 '하둔마을금고'에서는 현금출자, 절미(節米)운동 통한 출자 등을 통해 착실하게 운영했다. 또 마을 주민들은 공동체로 협동 정신과 전통적인 상부상조가 뛰어났다.


하둔마을은 가진 고유한 정신으로 '새마을금고'의 발상지가 됐고, 이것이 '새마을금고'의 56년 역사의 시작이다(글 계속, 이 글 내용은 부친과 모친 평소의 말씀, 하둔마을 어른들 말씀, 필자 기억을 참고했음).

기사입력 : 2019-09-02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naver URL복사
뒤로가기 홈으로

인기뉴스

URL 복사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