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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덕의 고금담리(古今談理) (85) : 달팽이 뿔 위에서의 다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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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2019-08-20

▲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내가 사는 집 주위에 반찬가게가 하나 있다. 처음엔 어른이 소꿉장난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갈수록 반찬 수가 늘어나고 가게를 찾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맛에 반한 고객들이 요즘은 김치도 주문해서 사 가고 제사음식까지도 부탁을 하는 모양이다. 저런 속도라면 얼마지 않아 크게 성공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아내가 남의 일에 걱정이 크다. 지금은 저렇게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어느날 옆에 더 큰 규모의 가게가 들어서 버리면 어떡하느냐는 걱정이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크다. 왜냐면 뭐가 하나 잘 된다 하면 염치도 상도덕도 없이 '따라 하기'가 판을 치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더 심화되는 현상이란다. 참 슬픈 일이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유행하는 먹거리가 생기면 창업 자영업자들이 비슷한 가게로 문을 여는 바람에 결국에는 서로가 출혈경쟁을 하다가 얼마 못가 폐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뉴스는 이화여대와 신촌역 사이의 중국 '마라탕(麻辣烫)' 전문점을 예로 들었다. 한 곳에서 장사가 잘되자 직선거리 200미터도 안 되는 짧은 구간에 같은 전문점이 여덟 곳이나 생겼다고 했다. 남의 일이 아니다 싶다. 아들이 음식점 개업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끼기 창업이 난무하는 건, 쉽게 개업이 가능한 우리나라 프랜차이즈 시장 구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작년 통계를 보면, 천 삼백 개 프랜차이즈 중에서 천 개가 반짝 문을 열었다가 사라졌고, 작년 프랜차이즈 브랜드 개수는 6천을 넘어서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단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아무나, 그리고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은 망하는 것 또한 그만큼 쉽다는 방증일 것이다.


이런 생존경쟁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길은 단 하나다. 남이 쉽게 따라 베낄 수 없는 실력과 경영 노하우를 갖추는 일이다. 엄청난 물적 자본 앞에서도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을 것 같다. 여기에 진심이 담긴 경영철학과 정성으로 고객들을 대하다 보면, 일정 기간 힘은 좀 들지 모르나 결국에 가서는 독보적 존재가치를 인정받아 장수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생존경쟁에는 크고 작음의 구별이 없는 것 같다. 아파트 현관문 손잡이 위, 그 작은 공간에서도 치열한 생존경쟁이 확인된다. 누군가가 손톱만한 자물쇠 수리 스티커를 붙여놓고 가면, 며칠 후 그 위에 다른 업소 스티커가 붙여진다. 그냥 덧붙이기만 하지 않고 못 같은 것으로 앞 스티커의 전화번호를 깨 뭉개고 붙인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손잡이 위는 늘 스티커 자국으로 지저분하다. 달팽이 뿔 위에서의 전쟁이 연상되는 그런 생존경쟁이다. 영원히 바꿀지 안 바꿀지도 모르는 그 손잡이 위에서….


이 대목에서 중국 백거이의 '대작(對酌)'이라는 시 한 수가 생각난다. "달팽이 뿔 위에서 무슨 일로 다투는가(蝸牛角相爭何事)? 기껏 부싯돌 불꽃 속에 붙어사는 이 몸이거늘(石火光中寄此身). 부유하면 부유한 대로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그저 즐길 일이지(隨富隨貧且歡樂), 입 벌려 웃을 줄 모르면 그게 바보 아닌가(不開口笑是痴人)?" 좀 여유를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충고로 들린다. 그렇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장소가 바뀐다 해도 우리 모두가 이런 여유로움을 가지고 사는 세상이 됐으면 참 좋겠다.


20대 후반의 아들에게 간혹 조언하는 말이 있다. 다소 출발이 늦다 할지라도 자기만의 인적·지적 자본을 준비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 하고, 감히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자기만의 '필살기'를 구축하는데 아낌없는 시간과 수업료를 투자하라고. 그리고 첨언 하나. 음식을 만드는 자체에서 행복을 찾고, 찾아온 손님들을 보며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인생을 만들어 보라고. 행복? 어쩌면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지 모른다. 큰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기사입력 : 20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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