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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74주년 광복절을 맞는 소고(小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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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수 마산운수(주)관리상무·참사랑봉사회 회장 2019-08-06

▲ 권영수 마산운수(주)관리상무·참사랑봉사회 회장
올해는 우리나라가 36년간 일제의 강압 통치에서 해방을 맞은 지 74주년을 맞이하는 날이다.

 

일제(日帝)는 1900년 이전부터 아시아 전역을 침략해 대일본제국(大日本帝國)을 꿈꾸어왔다. 1909년~1945년 8월 15일 패전 (항복) 이전까지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필리핀 등 서서히 아시아 전역을 침략해 많은 사람들을 끌고 가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등을 성 노리개로 삼아왔다.


이를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던 미국, 영국 등 연합군들은 1년 전부터 원자탄(原子彈) 투하에 대한 비밀회동을 가졌다. 일본 어느 도시가 가장 효과적일까?하는 밀담(密談)을 나누기도 했었다. 처음엔 도쿄(東京) 지역 일본 왕궁(日本王宮)으로 하자고 했으나, 연합군의 폭격으로 주요 군사시설 등이 거의 반패가 됐다. 그다음으로 일본의 옛 수도였던 인구 100만의 교토(京都)를 기준으로 삼았지만, 무산되고 다시 히로시마와 나카사키로 결정된 것이다.


원폭을 투하하라는 명령을 하달받아 8월 6일은 히로시마에 원자탄을 투하했고, 그다음 9일 날 또다시 나카사키에 투하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쉽게 항복을 하지 않아 이번엔 일본왕궁(日本王宮)을 폭파하겠다고 했다. 일본 천황(日本天皇)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는지 1945년 8월 15일 정오 12시 기점을 맞춰 히로히토 일왕(日王)의 떨리는 목소리가 라디오 잡음을 타고 흘러나왔다. 대동아 전쟁 종결에 관한 항복 조서문이었다.


당시 히로이토는 일본 왕실이 대대로 간직해온 3종의 신기(神器·조상이 전해준 칼(刀), 굽은 옥(玉)과 거울)를 폭격에서 보호할 방법만 찾느라고 골몰했다. 백성은 안중에도 없이 3종신기 보호 타령으로 8월 6일 히로시마와 8월 9일 나카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原子爆彈)으로 10일 이상 날짜를 소비했다. 부상당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었는데 한국인을 포함해 33만 명이 조기에 치료를 받지 못해 희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세계 지식인들은 지난번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이 강제징용과 위안부 등을 성 노리개로 삼아 비난을 받아왔다. 뿐만 아니라, 중국에는 731부대를 창설해 세계 여러 나라 사람(조선인 독립군 7명 포함)들을 잡아다가 마루타(통나무)로 만들어 생체실험(生體實驗)을 한 후 잔인하게 죽이기도 했었다.


일본의 모 언론사가 역대 총리 11명에게 한국정부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설문조사를 했는데, 그중 5명은 진정한 사과를 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한 지난번에는 도쿄의 양심 있는 젊은 엄마들과 고교생 등 5천여 명이 나서서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반(反)아베 시위를 벌인 적이 있기도 했다. 또한 아베 외 할아버지도 당시 조선인 등 1030여 명을 죽였다고 실토했다.

 

또한 일본은 1994년 패전 1년 전부터 조선인과 중국인들의 상대로 국민징용령(國民徵用令)제를 선포했다. 철도·탄광·도로·항만·군수공장·전쟁터 등에 수많은 사람들을 끌고 가 노예처럼 강제노역을 시키고 총알받이로 삼아 많은 사람들이 구타를 당하거나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이를 볼 때 국제사회는 일본정부의 만행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일제 침략 36년의 대량학살(大量虐殺)과 강제징용문제와 위안부 문제 등 일제만행과 독립투사들의 희생정신과 애족정신, 나라사랑 안보의식 등 많은 사람들에게 설파(說破)해 오고 있다.


지난 3·1절 100주년을 비롯해 4월 임시정부 100주년, 보훈의 달(6·25), 8·15 광복의 달 등 시민, 학생, 합포구청, 우체국, 한국교통안전공단 경남지사, 창원 자동차 검사소, 경남 교통문화연수원, 언론사 등 나라사랑 계몽활동과 교통사고 줄이기 운동 등 일년내내 지속적인 협조와 동참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지면을 통해 감사에 말씀을 드린다.

기사입력 : 2019-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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