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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까치설날의 유래와 인생수업 어머니의 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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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수 마산운수(주) 관리상무 / 참사랑봉사회 회장 2019-01-30

▲ 권영수 마산운수(주) 관리상무 / 참사랑봉사회 회장
 이제 얼마 후면 설날(구정·舊正)을 맞이하게 된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先祖)들은 1월을 사용하지 않고 정월(正月)을 사용해온 것은 우리 모두 올 한 해를 정직(正直)하게 살아가자는 그런 뜻이 담겨 있는 것 같다.

 

 필자는 설날이 다가오면 어린 시절 동심(童心)으로 돌아가 까치설날에 대한 노래를 불러 보기도 한다.


 '까치설'은 예로부터 작은 설날(섣달그믐)을 가리켜 아치설 또는 아찬설이라고 했다. 아치는 작은 뜻을 지니고 있는데 아치설의 아치의 뜻을 상실하면서 아치와 음(音)이 비슷한 까치로 바뀌어 불려왔다고 한다. '까치설'의 설화(說話)를 보면 삼국 유사에 기록되어있는 신라 소지왕 때 왕후(王后)가 어느 스님과 내통하여 왕(王)을 해(害)하려고 했는데 까치(까마귀)와 쥐, 돼지와 용(龍)의 인도(人道)로 이를 모면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때부터 쥐, 돼지, 용은 모두 12간지(干支)에 드는 동물이라 그날을 기념하지만 까치를 기념할 만한 날이 없어 설 하루 전날을 까치의 날이라 하여 까치 설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설날에 대한 유래를 살펴보면 나름 대로의 역법(曆法)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에 이미 부여족(族)이 역법에 대한 기록 되어 있고 신라 문무왕에 대해서는 중국에서 역술을 익혀와 조력(助力)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를 볼 때 오늘의 설날과 같은 유사성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설 명절은 수백 년 전부터 조상 대대로 전해 오는 고유명절(固有名節)이다. 그런데 해마다 명절 때가 되면 일부 중산층들이 해외에서 명절을 보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언론보도를 접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고향은 조상 대대로 지켜온 얼이 살아 숨 쉬는 삶의 터전이다. 내가 태어나고 내가 자란 고향에서 설 명절을 보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필자는 어머니의 치마폭에서 어리광을 부릴 어린 나이에 집을 뛰쳐 나와 고아(孤兒)가 아닌 고아로 전전하면서 생일 없는 소년으로 살아왔다. 낮에는 생존법칙(生存法則)을 위해 일을 하고 밤에는 학문을 깨우치기 위해 나름대로 글공부를 하기도 했다. 좀 더 넓은 세상을 알기 위해 전국 각지를 다니며 견문(見聞)을 넓혀 나갔다. 그 이후 정의를 위해 독재정권퇴진(獨裁政權退陣)이라는 글을 써서 보내다 끌려가 몇 번의 죽음의 고비를 넘기기도 했었다.


 필자는 이런 고초(苦楚)를 겪고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런 줄도 모르고 설 명절이 다가오면 동구(洞口) 밖에서 아들을 만나기 위해 눈보라가 몰아치는 맹(猛)추위 속에서도 하루 종일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떠난 지금은 동구 밖에서 기다려 줄 사람도 없거니와 설날의 분주함 속에서도 오직 어머니의 빈자리에 대한 아련한 추억만 남아 있을 뿐이다. 설 명절이 그토록 그리웠던 것은 그 자리에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이다.


 오늘 밤도 생전(生前)에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며 불초(不肖) 자식의 용서를 빌면서 어머니, 어머니라고 불러본다.

기사입력 : 2019-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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